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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수수수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9-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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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주능의 하이라이트, 귀때기청봉 오르막을 올라가고 있다. 이 구간은 어렵다기 보다 대단히 짜증나는 구간이다. 정상적인 등산로가 없다. 돌무더기 위를 밟고 뛰고 해야 한다. 귀때기청봉 전체가 이런 길로 이뤄져 있어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접지력이 좋고 바닥이 탄탄한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스틱도 필수다. 실컷 산을 탈 수 있는 계절이 왔다. 많이 덥거나 습하지 않고 또 건조하지도 않은, 생활하기 딱 알맞은 이상적인 날씨를 가진 가을이 코앞이다. 더운 날씨를 피해 몇 개월간 산 아래 계곡이나 하천, 야영장 일대만 살금살금 다녔던 등산 마니아라면 달력이 9월로 넘어가는 순간을 출발 신호로 간주할지도 모를 텐데, 그들 중 몇몇은 산에 갇혀 온종일 풀숲을 헤매는 쾌감을 기대하며 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대종주'를 계획하고 있을 수 있다. 거리가 대충 30km가 넘는 능선 위에 파고들어 야금야금 코스를 갉아먹는 상상을 하면서 지도를 펼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번 설악산 대종주는 그런 마니아를 겨냥했다. 우리나라 대표 대종주 코스인 강원도 인제 남교리에서 출발, 대승령을 지나 서북주능(귀때기청봉~대청봉), 공룡능선, 마등령,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종주를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준비한 체력으로 과연 멀고 험한 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다. 서북주능 등산로. 잡목으로 우거졌다. 반바지를 입었다면 종아리에 상처가 생기는 걸 각오해야 한다. 이 구간은 뛸 수 있는 구간이 얼마 없다. 설악산은 '크다' '우리'라고 통칭한 멤버는 나를 비롯해 박기완, 조경훈 세 명이다. 박기완은 한문학 박사다. 얼마 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전 장거리 트레일러너로 중국에서 열린 100km 대회에 참가해 완주했다. 조경훈 역시 장거리 트레일러너다. 그 역시 작년에 무시무시한 난이도로 알려진 장수트레일레이스 100km 부문에 나가 완주했다. 뭣도 아닌 나만 애매한 상태였는데,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취재 몇 달 전부터 훈련에 집중했다. 7월 31일 밤, 우리는 서울 동대문에서 만났다. 조경훈은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올해 제주도에서 열리는 100마일(160km) 대회에 나가기 위해 맹훈련 중이라고 했다. 반대로 박기완은 살이 찐 상태였다. 그는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한동안 산을 끊었다고 말했다. 곧 결혼해 독일로 떠날 계획인 그가 덧붙여 말했다. "아내도 그렇고 예비 장모님도 그렇고 저보고 모두 살을 좀 찌우라고 했어요. 그동안 달리기 때문에 몸무게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거든요." 박기완은 차에 올라타면서 이번 설악산 대종주를 두고 걱정된다고 중얼댔다. 그에 비해 조경훈은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남교리에서 시작해 공룡능선을 거쳐 설악동으로 하산하는 설악산 대종주는 산에 오래 다녔다고 하는 경력자에게도 부담되는 코스다. 거리가 길 뿐만 아니라(약 40km) 누적 고도도 높다(대략 4,000m). 그중 경력자가 도전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물'이다. 중간에 마실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희운각대피소가 유일하다. CP(체크 포인트, 일명 보급소) 없이 자력으로 가야 한다. 나는 이 코스에 두 번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두 번 모두 체력과 물 부족으로 포기했다. 이번에는 성공할까? 그럴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귀때기청봉의 너덜지대를 떠올리니 짜증이 솟구쳤다. '아, 거길 또 가야 한다니.' 게다가 이날 서울 낮 최고 기온은 무려 36°C였다. 다음날 설악동 기온도 비슷한 수준으로 예보되어 있었다. 한국은 국토가 작지만 어느 곳이든 코스를 짜깁기해 다양한 대종주 코스를 만들 수 있다. 백두대간을 비롯해 9개의 큰 산줄기(정맥)와 14개의 그보다 더 작은 산줄기(기맥)로 뒤덮인 덕분이다. 집 뒤에 있는 산 중 아무거나 골라 산에 오른 다음, 절대 마을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적어도 20km 이상 능선을 이어갈 수 있다. 코스가 많지만 사람들이 '대종주'라고 부르는 구간은 국내에 얼마 없고, 그중 설악산이 대표적이다. 왜 여기만 특별대우일까? 말할 것도 없이 이 구간은 험한 한편 아름답고 그러면서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 파고들고 싶어 옛날 기사를 찾아봤다. 1985년 8월호와 9월호에 설악산 북릉(미시령~대청봉)과 서북주능(대승령~대청봉~관터골~오색) 기사가 실렸다. 각각 박인식, 안중국 기자가 다녀왔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기사 제목에 '설악 대종주'라는 단어를 달았다. 모바일 야마토게임장 박인식 기자는 '태백산맥의 일부라는 총체적 관.으로 볼 때 설악의 주릉자리는 당연히 북릉'이라고 주장했다. 안중국 기자는 서북주능(대승령에서 대청봉까지의 능선) 종주에 관해 '그 어느 종주등반보다 시원하고 장쾌하며 성취감 또한 크다'고 적었다. 두 사람의 주장을 종합하면 설악산의 서북릉과 북릉의 일부로 이뤄진 지금의 대종주 코스는 백두대간의 한 구간을 지나는 아주 장쾌한 곳으로서 여기에 '대종주'라는 말을 붙이기에 적당하다. 또 두 사람이 쓴 글을 살펴보면 재미있고 대단한 모험을 펼치기도 했는데, 그런 면에서 설악산 종주에 '크다'는 수식을 얹어도 무리는 없고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설악산 대종주를 하니까, 뭔 일이 생기면…" 이런 식으로. 모두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차 안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밤 12시 넘어 인제 남교리에 도착했다. 문을 여니 더운 기운이 훅 끼쳤다. 더웠다. 나는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선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새벽 3시 입산 허가 시간이 되면 움직이기로 했다. 땀 냄새만 좀 없어졌으면 새벽 3시가 됐다. 주위는 캄캄했다. 뜨겁게 데워진 수증기가 사방에서 몸을 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매우 더웠다. 하지만 셋 중 누구도 "올라가지 말고 차에서 자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설악산 대종주 열차가 우리를 두고 곧 떠날 것처럼 굴면서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나와 조경훈은 트레일러닝용 베스트를 착용했고, 박기완은 트레킹용 작은 배낭을 멨다. 각자 스틱도 들었다. 준비를 마치고 남교리탐방지원센터 건물 앞으로 갔다.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출입문이 열려 있었다. 박기완이 맨 앞에 섰다. 그는 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손목에 찬 GPS시계에 12분 페이스라고 찍혔다. 얼마 안 가 심박수가 170까지 올라갔다. 복숭아탕 용탕폭포 앞. 남교리 출발지.에서 여기까지 약 4km. 빠른 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랜턴이 없으면 앞에 폭포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어둡다. 옆에서 계곡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흘렀는데, 그것이 더위를 물리치진 못했다. 머리 위에서 물이 영원히 쏟아지는 물뿌리개가 달린 것처럼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박기완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나는 맨 뒤로 쳐졌다. 심박수는 낮아지질 않았다. 겨우 발걸음을 멈춘 곳은 '복숭아탕' 위였다. 데크 위에 올라 헤드랜턴을 끄고 가만히 서서 쉬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폭포 소리만 들렸다. 힘들긴 했어도 괴롭진 않았다. 앞으로 남은 거리가 얼마인지 따지지도 않았다. '시간이 나를 대청봉까지 데려다주겠지'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긍정 혹은 부정의 감정이 아니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체념도 아니었고, 오히려 '무無'에 가까웠다. 등산로를 따라 거세게 흐르는 뭔가에 몸을 맡기고 '가자!'는 기분이었다(돌이켜보니 이런 기분이 든 탓은 그동안 쌓아둔 체력이 근육 안에 충만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굳이 입을 벌려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10분쯤 지나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 이윽고 오른쪽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작아졌다. 등산로도 좁아졌다. 곧 능선에 올라섰다. 안개가 자욱했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후텁지근한 여름 왕국에서 으스스한 드라큘라의 성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출발한 지 3시간 30분 만에 대승령에 올랐다. 이름만 '고개'인 봉우리에 올라 좀 오랫동안 쉬었다. 이곳은 옛날 내설악(백담사 방면)과 남설악(장수대 방면)의 핵심 길목이었다고 하고, 그에 따라 봉우리를 넘나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충 서북주능의 시작. 혹은 끝지。으로 취급된다. 고개로서의 기능은 상실된 지 오래다. 대승령은 그저 우리처럼 남교리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아주 반가운 이정표이자 잠깐 쉬어갈 수 있는 너른 터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다. 대승령에서 출발 준비 중인 조경훈. 힘들어서 정상 안내판 부근에 누워 쉬다가 찍었다. 땀으로 번들번들한 피부와 흠뻑 젖은 상의에서 이날 날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음료를 파는 주막이 있었다고 해도 우리에겐 큰 감흥은 없었을 것이다.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은 탓에, 또 귀때기청봉을 올라야 하는 부담 때문에 우리는 초. 없이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몸은 땀과 습기로 축축했다. 하지만 몸마저 축 처지진 않았다. 지독한 땀냄새만 좀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서 걸었다 릴게임 사이트 . 잦은 오르내림을 거쳤다. 돌뿌리와 나무뿌리, 잡풀들이 발을 붙잡고 다리를 할퀴었다. 바닥만 보느라 거북목이 됐다.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과 바람 때문에 살짝 추웠다. '재킷을 입을까?' '방수 바지를 입을까?' 고민만 했다. 배낭을 잠깐 벗을 여유조차 없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빨리 걸었다가 느리게 걸었다가 반복했다. 나중에는 스틱에 매달린 채 질질 끌려가는 모양이었다. 희뿌연 풍경 속에서 귀때기청봉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혼잣말을 했다. "여기부터 시작이네."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커다란 바위 하나씩 조심스럽게 밟고 올라섰다. 확인하고, 밟고, 올라서고. 이 동작을 기계처럼 반복하면서 .。 높이 올라갔다. 지이잉, 지이잉. 언덕을 오르는 포클레인처럼, 트랙터처럼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면서 장애물을 헤쳐나갔다. 이윽고 귀때기청봉 정상에 섰다. 대승령에서 여기까지 4시간 정도 걸렸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우리는 귀때기청봉에서 오래 쉬었다. 귀때기청봉 정상. 구름과 바람만이 가득했다. 주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하산길도 너덜길이라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산 아래는 36°C, 산 위는 25°C "우리 얼마나 더 가야 하죠?" 산행 시작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박기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많이 힘들었던 모양으로 눈과 눈썹이 한없이 밑으로 쳐져 있었다. "5시간 정도 더 가면 대청봉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대답을 들은 그는 이전처럼 입을 닫았다. 그리고선 묵묵히 흰 구름 속을 내다봤다. 귀때기와 뺨때기를 바람에 내어주고 얼얼할 정도로 실컷 얻어맞고 난 뒤에야 우리는 꼭대기에서 내려왔다. 마음이 살짝 급해졌다. 오후 1시 전까지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당탕탕 너덜길을 내려갔다. 구름이 걷혔다. 해가 비췄다. 더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바람은 여전히 세게 불어 오히려 더 상쾌하고 시원했다. 산 밑에 사람들은 덥다고 난리를 치고 있겠다고 생각하니 고생스러운 '피서'를 즐기고 있는 우리가 그리 불쌍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36°C의 아랫마을에서 누워서 쉬고 있기 VS 25°C 산 위 능선 30km 종주하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들은 어떤 걸 선택할까? 궁금하긴 했다. 한계령삼거리를 지나 그대로 끝청으로 향했다.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길도 널찍했다. 다리를 할퀴는 수풀이 없어졌다. 이 구간은 백두대간 능선의 한 구간이면서 설악산 온 김에 대청봉에 올라보겠다는 초보 등산객으로 붐비는 코스다. 사람이 많아 안심이 되긴 했지만 우리 앞을 막는 등산객이 늘었고 또 우리 뒤에 바싹 붙어 쫓아오는 등산객도 더러 있어 신경이 쓰였다. 누가 앞에 있건 없건, 뒤에 누가 붙었건 상관하지 않고 우리는 또 트랙터처럼 끊임없이 다리를 놀렸다. 대청봉 아래 새로 지어지고 있는 중청대피소. 외관이 이전보다 깔끔한 모양이었다. 끝청을 지나 중청대피소가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새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울타리 너머 슬쩍 보니 외관이 이전 대피소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기도 했는데, 대피소가 아니라 호텔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편으론 이 높은 곳에 건물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더 나아가 산 속 깊은 곳에 들어가 터널까지 뚫는 인간들을 떠올리면서 거기에 비한다면 설악산 대종주는 힘든 일의 순위를 매겼을 때 500위 목록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도 들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힘이 좀 났다. 옛 중청대피소 앞 헬기장에 누워 잠깐 쉬었다가 대청봉으로 올라갔다. 대청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중이 형! 성중이 형!" 홍건희라는 친구였다. 그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대단한 체력을 지닌 아웃도어 마니아다. 새벽 3시에 안내산악회 버스를 타고 한계령 삼거리에서 내린 다음 대청봉에 갔다가 공룡능선을 탄 다음 봉정암으로 갔다가 다시 올라와 공룡능선을 또 탄 다음 대청봉에 올라왔다. 공룡능선을 하루에 두 번 탔고, 이 구간만 통과하는 데 2시간 걸렸다고 했다. 대단한 산꾼인 그가 우리에게 물었다. "지금 여기서 귀때기청봉을 넘어 대승령에서 하산하면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했다. 릴게임추천 "음, 무리일 것 같은데. 귀때기청봉을 넘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거길 넘어가면 한계령으로 다시 되돌아오긴 힘들 거야. 또 거긴 뛸 수 있는 구간이 얼마 없어. 길이 썩 좋진 않거든."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소청을 향해 달려서 내려갔다. 우리도 그의 뒤를 따랐다. 얼른 희운각대피소로 내려가 。심을 먹은 다음 오후 1시 전에 공룡능선 입구에 설 계획이었다. 대청봉 도착! 설악산 대종주에 참여한 사람들은 여기를 꼭 들렀다가 간다. 설악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힘들면 그냥 지나쳐도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왼쪽에 살짝 등장하는 사람은 대단한 산꾼 홍건희씨다. 그는 이날 공룡능선을 2번 탔다. 가장 힘들었던 소공원 하산길 12시 30분쯤, 길고 긴 내리막을 통과해 터덜터덜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물을 보충하기 위해 대피소 매.으로 갔다. 가는 중에 박기완이 다급히 뛰어와 나를 말렸다. 그리고선 말했다. "저는 물이 많이 필요 없어요!" "왜요? 아직 갈 길이 좀 남았는데." "저는 더 못 가겠어요. 여기서 쉬다가 하산할게요." 나는 놀랐다. 아무 말 없이 맨 앞에서 조경훈과 나를 이끌던 그가 포기를 선언하다니! 솔직하게 털어놓는 태도를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혼자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고 나와 조경훈만 공룡능선을 타기로 했다. 짧은 순간 나도 종주를 포기하고 그를 따라 내려갈까 망설였는데, 허벅지 근육이 더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나는 다리가 이끄는 대로 조경훈과 공룡능선으로 향했다. 조경훈과 나는 공룡능선 구간을 3시간 만에 가보자고 계획했다. 중간에 멈춰서 사진 찍는 시간을 줄이고 덜 쉰다면 가능할 거라는 계산이었다(보통 걸음으로 이 구간은 5시간 정도 걸린다). 구름은 완전히 걷힌 상태였다. 햇빛이 정수리로 쏟아졌다. 다행히 바람이 많이 불어 뜨거운 열기가 흩어졌다. 공룡능선이 아름답다고? 이날 우리에겐 아니었다. 기암괴석은 그저 돌덩이였다. 멀리 보이는 내설악 풍경은 달력 그림이었다. 1275봉 오르막과 나한봉으로 이어지는 거의 수직처럼 보이는 등산로는 '불량배'와 다름 없었다. 이 사악한 등산로는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괴롭힘은 곧 끝날 것 같으면서도 지독하게 이어졌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보기에 아름답지만 설악산 대종주를 하는 사람에겐 깡패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룡능선이 휘두르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겨우 피하고 막으면서 3시간을 견딘 끝에 겨우 마등령에 도착했다. 입 안이 꺼끌했다. 한숨이 나왔다. 몸 어디쯤 수십 곳에 멍이 들었거나 상처가 나서 피가 철철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비선대까지 남은 거리는 약 3.5km. 우리는 여기를 1시간 만에 통과해 보자고 했다. 공룡능선 끝자락에서 힘든 구간이 끝난 줄 알고 가파른 오르막 끝에서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어려운 코스는 더 이어졌다. 공룡의 괴롭힘은 무지막지했다. 스틱에 온 몸을 기대면서 환자처럼 절뚝이면서 내려갔다. 우리는 환자이면서 엉덩이에서 곧 '설사'가 발사되기 직전인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다. 남은 거리가 。. 줄어드는 것을 GPS 시계를 보며 확인하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장군봉에 이르렀을 때 결국 속도를 줄였다. 내리막이 상당히 가팔랐기 때문이다. 헛것이 계속 보인 탓도 있다. 주위의 바위에는 온통 눈과 코와 입이 달린 것처럼 보였다. 멀리 있는 나뭇가지들은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것 같았다. 돌무더기가 쌓인 곳은 멋진 산장이나 주택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신선대에서 조경훈. 그는 에너지가 팔팔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면서 온갖 환영에 시달린 끝에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비선대에 도착했다. 17시간 만에 만난 평지여서 무척 기뻤지만 여기서 설악동까지 빠져나가는 길도 끔찍했다. 이번엔 발바닥도 아팠다. 2km 남짓 거리를 걸으면서 속으로 욕을 엄청나게 해댔다. 지금껏 수십 차례 이 길을 왕복했어도 불만이 없었는데, 난생 처음 화가 치밀었다. '이 길을 대체 자동차 없이 어떻게 통과하란 거야!' 계속 투덜댔다. 투덜거림과 짜증섞인 말이 쓰레기처럼 입에서 쏟아졌다. 옆에서 통을 받쳐들고 그 말들을 주워 담고 있던 조경훈이 권금성 케이블카 부근에 이르러 말했다. "이제 뛰죠!" 나는 그를 따라 뛰었다. 신흥사 일주문이 성큼성큼 가까워졌다. 문 아래 닿자마자 나는 시계의 GPS를 껐다. 시계에는 18시간이라고 기록됐다. 할 만 했습니까?설악산 대종주는 전문가들조차 쉽게 갈 수 있는 코스가 아니다. 거리가 길고 누적 고도가 크다 릴게임골드몽 . 도중에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극히 적다. 아주 고생스러운 길이다. 이 길을 함께한 박기완, 조경훈에게 소감을 물었다. 조경훈(회사원, 2025 장수트레일레이스 100km 완주) 산행 경력은 짧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굵직한 트레일러닝 대회에 여러 차례 참가했고, 작년 100km 거리를 완주한 장거리 트레일러너이기도 하다. 어땠습니까? 좋았나요? 나빴나요? 총평을 듣고 싶습니다. 만족스러웠습니다. 설악산 대종주는 2년 전 처음 시도했습니다. 그땐 준비가 부족해서 서북주능 이후 한계령으로 하산했습니다. 지쳐서 더 갈 수 없었거든요. 그동안 계속 산을 타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쉬웠거든요. 언젠간 재도전하리라 다짐하고 꾸준히 훈련했습니다.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심지어 하산 후에도 살짝 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남았습니다. 올해 10월 트랜스제주 100마일 도전을 앞두고, 좋은 훈련이 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여름 설악의 멋진 풍경을 진하게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하기도 했고요. 바람이 불어 산행 내내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힘든 구간은 어디였나요? 마등령~비선대~소공원 하산길이오. 끔찍한 형벌을 받는 듯한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잘 버티던 발바닥에서 불이 났습니다. 근사해 보이던 설악의 풍경이 울그락불그락 화난 난폭한 깡패처럼 느껴졌습니다. 마등령 이후 비선대까지 1시간 조금 넘어서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더 오래걸렸습니다. 1시간 40분 정도. 이 40분이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급하강 코스에 일부 미끄러운 자갈길이 있어, 하체 부담이 컸습니다. 그리고 비선대~소공원 평지길이 원래 이렇게 멀었나요?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영화 '백룸'에 갇힌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구간은 어디였나요? 귀때기청봉~한계령~대청~공룡능선~마등령 구간입니다. 재작년 귀때기청봉에 왔을 땐 온통 날이 흐려 웅장한 너덜지대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았는데, 귀때기청봉 이후 한계령 가는 길에 날씨가 개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고, 상상만 하던 풍경 속을 직접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한계령 이후는 그나마 전체 구간 중 평탄한 길이 많았고, 살짝 뛸 수 있어 일부 회복하기 좋았어요. 공룡능선은 지금껏 5회 정도 갔는데, 이번처럼 전 구간 쾌청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도 적어 1275봉 이후는 마치 전세낸 듯 산행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큰 산을 둘이서만 떵떵거리며 걷고 있다니! 적당히 넘어간 노을이 바위 골짜기 곳곳 물든 모습도 좋았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행복을 경험하고,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했습니다. 이번 종주를 위해 실시한 훈련이 있을까요? 어떤 것이었을까요? 앞서 말했듯 올해 10월 트랜스제주 100마일 도전을 앞두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기본 목표는 매달 누적 거리 200km, 누적 고도 1만m 수준으로 훈련하는 거예요. (작년 장수 100K 준비 시, 박기완 박사가 추천해 준 훈련 강도) 이를 위해서 일주일 중 평일 3일 정도는 거리 8km, 고도 200~400m/일 동네 뒷산 코스를 뛰고, 하루는 평지 인터벌 훈련하고, 주말 중 하루는 산악 LSD 훈련을 합니다. (최소 누적고도 1,000m 이상 목표) 회사 。심시간엔 주 3회 정도 헬스장에서 기본 근력 운동을 하고, 이 중 하루는 하체에 꼭 할애합니다. 특히 불가리아 스플릿 스쿼트, 카프레이즈, 발목 강화 훈련 등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퇴근 후 리커버리 겸 30분 정도 저강도 자유형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대회 전까지 최대한 심박 능력을 강화하고 싶은데, 이번 설악산 기록을 보니 여전히 업힐에서 심박이 높게 올라가서 고민이네요. 가장 도움이 됐던 장비는 무엇이었나요? 스틱입니다. 누적 상승/하강 모두 크고, 경사도 심한 코스였기에 스틱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틱을 못 쓰는 트랜스제주를 대비해 서북주능 중간에 일부러 스틱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금방 다리에 쥐가 나더라고요. 결국 포기하고 스틱을 쓰니 이후엔 쥐가 나지 않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불필요했던 장비는 무엇이었나요? 소프트쉘 재킷입니다. 이번 산행은 주행 복장 외에 바람막이와 소프트쉘 재킷을 여분으로 챙겼습니다. 안전에 민감해 워낙 보수적으로 짐을 싸는 '보부상' 타입이라 두 벌을 챙겼는데, 이 시기에 다시 간다면 바람막이 하나만 챙길 것 같습니다. 사실 바람막이도 이번 산행에 사용하진 않았지만, 산 날씨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비상용으로 챙겨야 할 것 같더라구요. 보완해야 할 。은 뭐죠? 오션파라다이스 다운 체력, 음식 등 알려 주세요. 만약 다시 도전하게 된다면 솔트스틱 브랜드의 '패스트 츄Fastchews' 캔디를 넉넉히 챙기겠습니다. (염분 및 전해질 보충 목적) 이번 산행 중 총 4번 정도 햄스트링과 종아리에 쥐가 올라왔는데, 그때마다 이 캔디를 꺼내어 먹었고, 입에 넣자 마자 순식간에 쥐가 풀렸습니다. 이 경험이 신기해서 산행을 마치고 AI에게 물었고,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AI가 답했다. * 염분 캔디가 10초 만에 쥐를 풀었다? 결론은 염분 캔디 자체의 '나트륨 보충' 효과 때문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킨 캡슐이 위장에서 흡수되어 혈중 나트륨 농도에 영향을 주려면 아무리 빨라도 수십 분은 걸립니다. 10초 만에 풀렸다면 그건 다른 메커니즘일 확률이 높아요. 실제로 스포츠과학에서 꽤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Miller et al. (2010) 연구에서 피클주스 같은 자극적인(짜거나 신) 액체를 마시면, 흡수되기도 전에 입 인후두의 감각수용체가 자극되면서 신경반사를 통해 근육 경련을 일으키는 운동신경 활성을 억제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삼키자마자 몇십 초 안에 효과가 나타나는 게 바로 이 반사 경로 때문이에요. 염분 캔디도 삼킬 때 짠맛이 확 느껴지는 타입이었다면, 비슷한 구강 반사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기완(한문학 박사, 2024 중국 강남 110km 완주), 희운각대피소에서 하산.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매달 누적 거리 200km, 총 획득고도 1만 m 이상을 채우는 트레일러너였다. 지금은 박사 과정 수료와 결혼 준비로 인해 잠깐 쉬고 있어, 체력이 떨어진 상태라 이번 대종주를 완주하지 못했다. 그는 8월 중순쯤 결혼하고 독일로 떠났다. 어땠습니까? 좋았나요? 나빴나요? 총평을 듣고 싶습니다. 당연히 좋았습니다. 오는 9월이면 한국을 떠나 산이라곤 하나 없는 낯선 땅에 갑니다. 지난 3월엔 지리산에 갔고, 8월에 설악산을 다녀왔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설악산을 다녀왔었고, 군대에 가기 전 지리산을 다녀왔었어요. 첫사랑과 오랜 사랑을 떠나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그리워할 것 같네요. 가장 힘든 구간은 어디였나요? 꽤 오래 산을 다녔지만 올해 상반기는 학위 취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산을 끊었어요. 3월 지리산과 8월 설악산이 전부였습니다. 등산은 정직한 운동이네요. 뛰어 다녔던 곳이었는데 걸어가기도 힘들었어요.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을 찍으니 다시 힘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지만, 희운각까지 가는 길이 미치도록 힘들었어요. 하산길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구간은 어디였나요? 새벽의 귀때기청봉 가는 길이오. 가장 위험하고 바람이 험한 구간인데,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아요. 집을 나서기만 해도 미치도록 더웠던 이때,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차고 거센 바람이 불던 너덜바위 구간이 지금 또 미치도록 그립네요. 이번 종주를 위해 실시한 훈련이 있을까요? 어떤 것이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인생의 다른 산을 넘어야 하는 시기였기에 실제 산행은 잠깐 멈춘 상태였어요. 산행 코스가 정해지고도 일부러 코스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대비 훈련을 할 수 없으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아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 누적 거리와 누적 고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출발했는데, 형벌에 가까운 난이도에 결국 귀때기청봉에서 물어보고 말았죠. "이거 언제 끝나는 건가요?" 가장 도움이 됐던 장비는 무엇이었나요? 스틱이오. 스틱이 없다는 것을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의 난이도였습니다. 가장 불필요했던 장비는 무엇이었나요? 바람막이입니다. 귀때기청봉 가는 길에 꺼내 입을까 생각도 했지만, 꺼내지 않았어요. 해가 뜨고 본격적으로 더워질 것을 알았기에 약간의 추위를 더욱 즐길 수 있었습니다. 36℃에 달하는 하산길에서는 역시 꺼내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보완해야 할 .은 뭐죠? 체력, 음식 등 알려 주세요. 내가 속한 트레일러닝 클럽에서 잠깐 쉬다 돌아온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이것만큼 정직한 운동이 없다"였어요. 희운각 가는 길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한 발씩 내딛을 때, 그 말을 나도 몰래 읊고 있었습니다. '등산 참 정직하구나. 체력 보완이 시급하다'라고요. 또 하나, 특히 여름 종주에서는 에너지드링크와 젤 말고는 달리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그렇게 먹어대면 질리기도 하고 입에서 나는 텁텁한 느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죠. 당장 내려가 양치를 하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뭐 좋은 방법 없으려나요?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위해 대피소 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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