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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수수수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09-14 16:5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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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귀토> 무대 후면의 미디어아트와 소리꾼들의 의상이 서사를 드러낸다. 국립창극단 제공
무장애가 유행이다. 최근 수년간 ‘배리어 프리’, ‘접근성 높은’, ‘무장애’ 등의 수식어를 달고 상연되는 공연이 부쩍 다양해졌다. 단순하게는 무대 한쪽에서 수어 통역사가 공연 내용을 전달하는 작품부터 수어 배우와 일반 배우가 뒤섞여 역할을 주고받거나, 애니메이션을 곁들인 자막과 음성해설을 겸하는 이야기꾼이 등장하는 작품까지 천차만별이다.
올해 들어서는 접근성 자체가 미학적 장치가 된 작품들이 즐비해 오히려 ‘무장애’, ‘접근성 높은’이라는 수식어가 불필요해 보일 정도다. 서로 다른 감각으로 공연을 만나는 관객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극장에 문을 여러개 내는 작업은 연극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무장애를 전면에 내건 음악극 <옹옹옹>과 뮤지컬 <극장의 마법사>뿐만이 아니다. 연극의 본질적인 놀이성과 신체성, 소리와 리듬,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환에 충실하다 보니 또 다른 접근 가능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창극 <귀토>, 음악극 <쌀알의 노래>, 뮤지컬 <청새치>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이 어떻게 극장의 문을 여러개 내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말과 수어, 자막과 안무 주거니 받거니
조선 후기 작자 미상 소설 ‘옹고집전’을 비틀어 진짜와 가짜, 원본과 복제의 경계마저 난장으로 만드는 탈진실 막장 음악극 <옹옹옹>(서동민 극본, 강훈구 연출, 상자루 작곡, 최진한 안무, 신나경 무대, 이경은 조명)은 ‘무장애의 무장애’를 떠올리게 한다. 수어 배우와 일반 배우의 역할이 계속 바뀌고 듀엣 마임이 깨알처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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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역할의 일반 배우가 오줌을 누는 장면에서 수어 배우가 슬쩍 주위를 살피거나 밴드 연주자들이 옹씨 부부의 열 남매로 불려나오는 장면들은 폭소를 자아낸다. 저신장, 청각 장애 등을 가진 배우들도 모든 역할에 막힘없이 어우러진다. 연주자와 등장인물, 말과 수어, 자막과 안무가 핑퐁처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연기와 통역을 나누던 선이 슬금슬금 사라지고 결국 다양한 옹고집은 모두 빗자루로 변해버린다. 모두 가짜였던 셈이다. 누가 배우이고 누가 통역자인지, 어느 쪽이 중심이고 어느 쪽이 보조인지 구분하던 관객의 시선 역시 뭉개진 지 오래다. 마지막 장면, “진짜는 여기 없다”라고 쓰인 문을 통과하는 주인공 옹고집이 한 번 더 허를 찌른다.
<옹옹옹>이 무장애를 놀이성으로 극대화했다면 뮤지컬 <극장의 마법사>(유자홍 극작, 김승진 작곡, 정윤 안무, 오준석 연출, 백철 무대, 손정은 조명)는 접근성을 미학적으로 풀어내고 적극적인 관객 참여로 공감대를 확장한다. L.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가 모티브. 공연 직전 긴장과 불안을 안고 졸다가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간 신인배우 도로시는 ‘초로초로록 빵빵삐리빵삥뽕’ 나라에 떨어진다.
겁 많은 사자 배우와 슬럼프에 빠진 허수아비 연출을 만나 극장의 마법사 철GPT를 찾아가고, 극장을 구성하는 감독들을 만나 공연예술의 근간인 약속과 용기를 돌아본다. 수어 배우와 일반 배우들은 페어로 움직이다 2인무에서 3인무로 계속 역할을 바꿔나간다. 모든 배우가 군무에 이르는 장면은 극장을 구성하는 예술가들의 연대로 읽힌다. 장애가 있는 관객에게 필요했던 수어와 자막, 음성해설이 비장애 관객에게도 유의미한 연극적 요소가 되는 현장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 <청새치>(문서희 극작, 고지원 작곡‧음악감독, 조민영 연출, 김경용 안무, 송지인 무대, 신동선 조명)의 아날로그 무대는 또 다른 접근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쟁과 상실로 삶과 글쓰기를 포기한 작가 밀러가 쿠바의 어부 그레고리오와 청새치를 쫓아 바다로 나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쟁터의 황량함과 쿠바 해안의 청새치잡이는 단순한 나무 데크 위 밧줄과 도르래, 판자 몇개로 표현된다.
는 연극의 본질을 돌아보는 아날로그 장치들을 통해 접근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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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12/weeklykh/30475yfxh.png" data-org-width="1200" dmcf-mid="3UE2H9HlWa"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2/weeklykh/30475yfxh.png" width="658">
뮤지컬 <청새치>는 연극의 본질을 돌아보는 아날로그 장치들을 통해 접근성을 높인다.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몸과 손에 잡히는 소품이 음악과 약속으로 없는 공간을 계속 만들어내는, 창의력과 연극성의 연속이다. 혼돈과 역경 속 기싸움을 벌이던 인물이 맞이하는 일출 역시 흔한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하지 않았다. 레트로 감성의 조명을 장막에 비춰 확대한 아날로그 미장센은 몸과 오브제, 관객의 상상력이 만나는 연극의 본질이다. 별도의 무장애 장치를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공연 안으로 들어갈 또 하나의 문을 낸 셈이다.
서로 다른 감각의 관객들이 들어오다
신체 움직임이 극대화된 음악극 <쌀알의 노래>(이시원 작·연출, 최원종 예술감독, 차근호 드라마터그)는 접근 가능성을 단번에 넓힌다. 신체 움직임과 장면을 설명하는 추임새를 능가할 접근성이 없다. 하물며 우리의 일상인 쌀이 소재다. 농업이 삶의 근간이던 20세기 후반, 농사에 부모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아이가 쌀 한톨로 변해 농부인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볍씨로 자라나 다시 밥솥의 쌀 한톨로 순환하는 과정을 14명의 배우가 신체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쌀을 물에 담가 싹을 틔우는 과정부터 모내기, 김매기, 수확 등의 과정이 우렁이, 소금쟁이, 지렁이, 잠자리 등 논의 생명체와 어우러져 펼쳐진다. “다 때가 있다”는 농사의 시간이 배우들의 움직임이 되고, 이앙의 노동과 논의 생태는 놀이가 된다. 새벽마다 논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자전거 벨 소리는 아이와 볍씨를 깨우는 정감 어린 기억이다. 소극장답게 코앞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논의 생명체로 변신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하다 보면 쌀 한톨에 들어 있는 시간을 저절로 감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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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수궁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고선웅 극본·연출, 유수정·한승석 공동작창, 한승석 작곡·음악감독, 지경민 안무, 이태섭 무대, 류백희 조명)은 미디어아트를 연상시키는 무대 후면의 선명한 영상과 자막 애니메이션, 바다와 육지의 다양한 생명체를 상징하는 화려한 의상으로 감각의 통로를 넓힌다.
용왕의 지병 치료를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해야 하는 자라는 토끼의 꾀에 속은 경험이 있다. 자라에게 잡힌 또 다른 토끼는 생명체의 보편적인 삼재팔란(모든 재앙과 고난)을 강조한다. 바다나 육지나 처지가 비슷한 삶임을 호소해 공감대를 끌어내 살아남는다. 판소리 특유의 소리와 표정, 고수의 북장단과 추임새, 국악관현악단의 라이브 연주에 객석의 반응까지 어우러지는 마당놀이가 걸판지다. 극장을 가득 채우는 폭소와 공감의 분위기만으로도 서로 다른 감각의 문들이 열린다.
<극장의 마법사>와 <옹옹옹>에서는 수어, 자막, 음성해설 등 접근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한 장치가 공연의 조건이자 작품 자체의 미학으로 드러난다. <청새치>와 <쌀알의 노래>, <귀토>에서는 거꾸로 연극의 놀이성과 신체성, 소리와 리듬, 즉흥적인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또 다른 접근 가능성이 생겨난다. 물론 ‘연극은 원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는 낭만적인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극장은 결코 모두에게 똑같이 열려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 수어와 자막, 음성 해설은 미학적 선택이기 전에 공연에 접근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몸짓은 누구나 알아보니까 괜찮다’는 말은 지금 존재하는 장벽을 오히려 보이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접근성이란 하나의 문을 크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감각의 관객들이 들어올 문을 여러개 내는 일이다. 귀로 들어오는 문, 눈으로 들어오는 문, 몸으로 들어오는 문, 장단을 타고 들어오는 문, 웃다가 얼떨결에 들어오는 문. 어느 문이 정문인지 굳이 따지지 않는 극장 말이다.
최근 극장이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는 ‘접근성’은 미래 공연을 위한 새로운 기술인 동시에,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은 장벽과 문법을 세우며 잊었던 태초의 연극성을 다시 불러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공연들은 일단 마무리됐다. <귀토>는 9월 18~19일 세종예술의전당, <청새치>는 9월 27일까지 대학로 et theatre 1, <쌀알의 노래>는 10월 2~4일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상연한다.
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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