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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수수수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6-09-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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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 사천 삼천포항 팔포음식특화지구 일원에서 '제23회 사천시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가 열렸다. 사천마도갈방아소리보존회 회원들이 경상남도 무형유산 '사천마도갈방아소리' 공연을 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역 유산을 조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록의 필요성'과 '계승의 위기'가 이야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쉽게 흩어진다. 이 기획은 단순히 지역 유산을 나열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들의 현재를 차분히 따라가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일이다. 전어의 계절, 가을이다. 그러고 보면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가을 전어 머리엔 깨가 서말',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등 전어와 관련한 속담과 표현도 기름지게 넘쳐난다. 전어를 한자로 표기하면 '錢(돈 전)魚(물고기 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전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살에 잔가시가 많지만 부드러워 목에 걸리지 않으며 씹으면 기름지고 맛이 좋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 서울에다 파는데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진귀하게 여긴다. 그 맛이 좋아서 사는 사람들이 가격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 수온이 올라 현재는 서해안과 동해안에서도 잡히지만, 과거에는 남해안에서 잡던 어종이었다. 그래서인지 전어와 관련한 무형유산도 경남과 전남광주에서만 하나씩 전승되고 있다 파칭코하는법 . 경상남도 무형유산 '사천마도갈방아소리'는 그중 하나다. 마도. /사천시 박영철 전승교육사가 기억하는 그 시절 마도 "아여"(앞소리) "어~여"(뒷소리) "어여"(앞소리) "어~여"(뒷소리) "어여"(앞소리) "어~여"(뒷소리) "아여"(앞소리) "어~여"(뒷소리) 박영철(65) 사천마도갈방아소리 전승교육사는 마도 토박이로, 어린 시절 마을 주민들이 전어를 잡을 때 내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박 전승교육사의 아버지도 어릴 때부터 부친이 내는 소리를 들어온 터라 언제부터 마도에서 전어를 잡으며 소리를 냈는지 알 수 없다. 전어의 고향인 마도는 실안낙조로 유명한 사천시 실안동 이순신바닷길 4코스(실안노을길) 앞바다에 있다. 면적은 0.112㎢, 해안선 길이는 2.5㎞로, 삼천포항에서 5㎞ 정도 떨어져 있다. 선착장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박 전승교육사가 어릴 때만 해도 60여 가구가 살았다. 전어잡이가 주업이었으며, 배만 12척에 달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 노를 젓는 배를 타고 전어를 잡았다. 당시에는 전어가 사람 발소리에 놀라 도망간다며 신발도 신지 않고 까치발로 배 안을 이동하던 시절이었다. 9명이 타는 본선과 3명이 타는 종선이 한 선단을 이뤘다. 본선에서 그물을 내려 전어 떼를 에워싸면 종선이 본선에 뱃머리를 맞대고 나서 본선과 종선의 무상(선원)들이 그물을 끌어 올렸다. "(본선과 종선이) 딱 쪼그라 들어올 때는 (뱃머리를 맞대기 전) 요 고기가 도망을 가삔다 아이가. 요 돌로 던지고 몽디로 치고 쪼까 였는 기라." 모바일 무료야마토게임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는 60년대 중반 동력선으로 교체됐다. 과거와 달리 한 척만으로 전어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보관·운송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그물 가득 건져 올릴 때는 선실을 비우고 전어를 채워 넣었다. 성질이 급한 놈인지라 얼마 안 가 죽기 일쑤여서 어판장에는 활어가 없었다. 그래도 싱싱해 회를 쳐서 먹었다. 마도에서는 90년대까지 전어잡이 전성기를 누렸다. 전어를 사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왔고, 이후에는 전국으로 유통됐다. 돈벌이가 되니 진주·산청 등지 일꾼들이 모여들었다. 단신으로 오기도,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이들은 곁방살이하며 한철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자식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가 배를 태워 바다로 보내려 한 시절이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배를 타면 배는 무조건 쌀밥이라. 아 배 보내믄 아 쌀밥 무서 좋고, 돈 벌어서 좋고. 우리 동기들이 22명이라. 국민학교 졸업해가 배 탄 아들이 절반은 됐어요. 말이 수월치. 대학교는 꿈도 못 꾸는 기고 중학교 나와도 잘 나왔다고 했어, 그때는." 2022년 10월 29일 사천 대포어촌계회관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 '사천마도갈방아소리' 공연이 열렸다. 사천마도갈방아소리보존회 회원들이 첫째 마당인 '갈방아 찧는 마당'에서 방아로 소나무 껍질을 찧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지난 8월 22일 사천 삼천포항 팔포음식특화지구 일원에서 '제23회 사천시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가 열렸다. 사천마도갈방아소리보존회 회원들이 경상남도 무형유산 '사천마도갈방아소리' 둘째 마당인 '갈을 퍼고 먹이는 마당'에서 소나무 껍질을 가루로 만들어 끓인 물에 면사 그물을 넣어 막을 입히고 있다 모바일 사이트 손오공게임 . /류민기 기자 방아로 소나무 껍질 찧을 때 부르던 소리 사천마도갈방아소리는 과거 마도 주민들이 전어를 잡을 때 부른 소리다. 출어 전 마을에서 전어잡이용 면사(綿絲) 그물에 갈을 먹이기 위해 소나무 껍질을 방아로 찧을 때 낸 소리가 원형이다. 면사 그물은 바닷물에 부식되기가 쉬웠다. 마도 주민들은 그물에 막을 입혀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소나무 껍질을 찧으면 나오는 가루가 제격이었다. 다만 한 번 먹일 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3~4가마니 정도가 필요했으며, 장정 4~6명이 3~4시간 동안 찧어야 했다. 이때 "에이야 디이야 갈방애야" 같은 소리를 냈다. 사천마도갈방아소리는 어업노동요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남성 어부들이 고단한 노동 속에서 호흡을 맞추며 부르던 고기잡이요다. 연희물로 재구성되면서 어구를 손질할 때부터 전어를 잡고 돌아와 만선을 기뻐할 때까지 어로 활동 전반의 노래를 아우르게 됐다. 연희물은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다. 방아로 소나무 껍질을 찧는 첫째 마당, 그물에 갈을 먹이는 둘째 마당, 배 고사를 지내는 셋째 마당, 고기를 잡는 넷째 마당, 만선을 기뻐하는 다섯째 마당이다. 연희물로 재탄생한 어업노동요 사천마도갈방아소리를 마당별로 살펴보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지.이 있다. 고기를 잡는 넷째 마당의 경우 배를 저을 때의 '놋소리', 본선과 종선이 그물을 끌어 올릴 때의 '사리소리', 전어를 퍼 담을 때의 '가래소리'로 이뤄진다. 다음은 놋소리와 사리소리다. "깃대 다발"(앞소리) "어야 디야"(뒷소리) "발무상아"(앞소리) "어야 디야"(뒷소리) "방아꾼소리"(앞소리) "어야 디야"(뒷소리) "쿵쿵 울려라"(앞소리) "어야 디야"(뒷소리) - 놋소리 중 일부 "자! 바다이야기게임연타 우리 살을 댕기세"(앞소리) "예"(뒷소리) "아여 사리야"(앞소리) "야여"(뒷소리) "이살 저살"(앞소리) "야여"(뒷소리) "중살로 땡기라"(앞소리) "야여"(뒷소리) "야~여"(앞소리) "야여"(뒷소리) - 사리소리 중 일부 60년대 초까지 본선과 종선으로 전어를 잡던 시절에는 발소리에도 전어가 놀라 도망간다며 배 안을 까치발로 다녔다. 두 배가 맞대기 전에는 전어 떼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돌을 바다로 던지고 몽둥이로 선체를 두드려 그물 안에 가둬두는 일이 먼저였다. 전어 떼가 달아나기 전에 그물을 끌어 올려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어느 정도 공연을 갈라쿠모, 문화재 될라쿠모 만들고, 만들고 이래 갖고, 몇 가지 덧붙여 갖고 한 기지. (원래) '어~여' 쿠모 '어~여' 하고 따라 가고 그런 식이었지. 자꾸 만들어 갖고 시간을 40분이고 넓피고 한 거지."(박영철 전승교육사) 사천마도갈방아소리는 뒷소리에 앞소리를 붙여 완성됐다. 첫째 마당에서 "에이야 디이야 갈방애야", 둘째 마당에서 "에이야 갈이야", "어~여", 넷째 마당에서 "어야 디야", "야여", "에헤야 가래야", 다섯째 마당에서 "치이나 친친나네" 등이 '날것 그대로의 소리'다. 어로 과정에서 피로를 잊고 작업 능률을 높이는 데 이만한 소리가 없었다. 선조 대부터 이어진 소리에 대한 자부심이 원동력 마도에서는 2000년대 들어 전어잡이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고령화된 가운데 젊은 사람들은 뱃일을 기피했다. 어선 규모는 소형화되고 조업도 부부 단위로 이뤄졌다. 수온 상승으로 서해안과 동해안에서도 전어잡이가 본격화됐다. 1980년대 마도 주민들은 문화유산으로서 이들 소리의 가치를 알고 연희물로 재구성해 보존·전승에 나섰다. 모바일 바다 이야기 게임 1993년 10월 '제25회 경상남도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선보였으며, 이후 2001년 7월 '제31회 경상남도 민속예술 경연대회'와 이듬해 10월 '제43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각각 우수상을 차지했다. 이 같은 활동을 토대로 2004년 3월 현재의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자신들이 나고 자란 마도와 선조 대부터 이어진 소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 선배들이고 나이 문 사람들이 '아, 우리가 봐도 요거는 문화재 가치가 있는 기다' 생각한 거지. 그때는 동네 화합도 잘되고 그란다 아이가. '이거는 우리 동네에서 문화재로 만들어야 한다', '넘 안 하는 고 갖다가, 이런 거는 참 기한 기다' 하고 동네 사람들이 화합을 해갖고 이리 만든 기라."(박영철 전승교육사) 사천마도갈방아소리보존회 회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천마도갈방아소리보존회 타 자치단체와의 교류를 통한 초청 공연 염두에 둬야 지난 8월 22일 사천 삼천포항 팔포음식특화지구 일원에서 '제23회 사천시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가 열렸다. 전국에서 미식가들이 삼천포항을 찾은 가운데 사천마도갈방아소리 공연이 열려 눈과 귀도 호강하는 자리였다. 사천마도갈방아소리보존회는 매달 한 번씩 전수교육을 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24일 공개행사를 진행한다. 보존회원들의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소리꾼인 박 전승교육사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찾아 양성하는 일도 과제다. 현재 지역 내에서만 공연이 이뤄지는데, 타 자치단체와의 교류를 통한 초청 공연도 염두에 둘 만하다. 사천마도갈방아소리는 농경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어업노동요로, 지역을 넘어 전승할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륙 지방에는 배 같은 게 없으니까 배를 가져가서 행사를 하몬 그 사람 얼마나 좋아하겄네. 내가 볼 때는 이 문화재가, 전국에 내도 문화재를 많이 구경을 다녀. 고기 잡는 문화재가 좀 힘들어, 없어. 모심기 요런 거는 많은데. 내륙 지방 같은 데 가모 진짜 인기를 끌 수 있는 일이더라고."(박영철 전승교육사) 사천 삼천포항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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